2013년 도덕운동 8월 회보
(社團法人)韓 國 道 德 運 動 仁 川 協 會
도덕운동인천지회
http://cafe.daum.net/kmmA
인천광역시 남동구 만수 6동1042 광명아파트 상가 307호
☎: 466-5059, fax) 466-5059
민자건의 효
당대 최고의 서예가로, 아버지가 반역죄로 처형된 데다가 어릴 때부터 키가 작고 못생겨서 남의 업신여김을 받았던 구양순은 당고조의 칙령을 받들어 '예문유취' 백권을 편찬하였다. 이 책의 '설원' 편에서 열 명의 공자 제자 중 한 사람인 민자건의 효행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공자가 논어에서 자기 제자를 이렇게 말했다. "덕행에는 안연, 민자건, 염백우, 중궁이 있고, 언어에는 재아와 자공이 있고, 정사에는 염유와 계로가 있고, 문학에는 자유와 자하가 있다." 위에 민자건은 동생이 하나 있었고 친모가 죽자 아버지는 재취를 들였다. 그리고 새로 두 아들을 낳았다. 아버지가 관가에 외출을 할 때 민자건이 수레를 끌게 되었는데 몹시 추운 날이었다. 말고삐를 놓친 아들의 팔을 잡다가 아들의 옷이 매우 짧다는 것을 안 아버지는 집에 돌아오는 길로 계모가 낳은 아들을 불러 옷을 살펴보았는데 매우 두툼하였다. 그리고 계모를 향해 "내가 당신에게 장가를 든 것은 무엇보다 어미를 잃은 두 자식 때문이었소. 그런데 당신은 나를 속이고 있으니 당장 집을 나가시오."
이 때 민자건이 이를 막으며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말하였다.
"어머니가 계시면 한 아들만 옷이 얇지만 어머니가 떠나시면 네 아들이 모두 헐벗게 됩니다."<요즘 읽은 최인호의 장편소설 <공자>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효란 어버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점을 바로 잡아주는 것도 훌륭한 효입니다.
한국도덕운동인천협회 회장 박 종 길
http://cafe.daum.net/kmmA
아버지의 유언
고려 말, 한 고을에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아버지와 함께 살던 남매 가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마저 병으로 "집안 재산은 모두 큰 아이에 게 주고, 작은아이에게는 옷 한 벌과 갓, 신발 한 켤레, 종이 한 장을 주도록 해라" 하는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누나는 아버지의 유언대로 재산을 모두 물려받았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어린 남동생이 나이가 들자, 왜 아버지는 누나에 게만 재산을 물려주고 자신에게는 아무런 몫도 남겨주지 않았는지 불만을 품게 되었다. 그는 누나에게 자신에게 재산을 나눠 줄 것을 요 구했지만 누나는 아버지의 유언이니 어쩔 수 없다고 들어주지 않았다. 결국 남동생은 관아에 소장을 내어 자신의 몫에 해당하는 재산을 찾으려고 했다.
안찰사는 이 사건을 두고 여러 날을 고민했지만 답이 나오지 않아 남 매를 불러 놓고 물었다. "너희 아버지가 죽을 때 너희는 몇 살이었느냐?" "그 때 저는 스무 살로 이미 시집을 갔었고 제 동생은 겨우 여덟 살이었습니다." 그제야 안찰사는 남매의 아버지가 한 유언의 뜻을 알아내고는 누나에게 조용히 물었다. "그때 네 동생이 의지할 사람이 누나말고 어디 또 있었겠느냐? 만약 재산을 똑같이 나누어주었으면 네가 동생을 온전히 키우지 않았을 테지. 그렇지 않느냐?" 안찰사의 물음에 누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그렇다고 대답했다.
"네 아버지가 너에게는 재산을 다 주고 동생에게는 옷과 갓, 신발, 종이만을 준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네 동생이 장성하면 이 종이에 소장을 쓰고 옷을 입고 갓을 쓰고 신발을 신고 관아에 가서 고소하면 공정하게 판결해 줄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너희 아버지는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남매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버지의 깊은 뜻을 깨닫고 눈물을 흘렸다. 물론 재산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 남매가 사이좋게 절반씩 나누어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