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회보
韓國道德運動協會仁川廣域市支會
인천광역시 남동구 만수 6동1042 광명아파트 상가 307호
☎: 466-5059, fax) 466-5059 (사)한국도덕운동 인천협회
http://cafe.daum.net/kmmA
죽어서 묘 자랑을 하느니
행복을 느낄 줄 아는 사람과 자신은 항상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다.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느 날 늘 행복한 웃음을 웃고 사는 행복한 사람을 찾아갔다. 그런데 행복한 사람은 평범한 월급쟁이에 늙고 못 배운 부모님과 미인도 아닌 아내가 있었고 집도 형편없었다. 불행한 사람이 물었다. "행복할 거라고는 하나도 없는데 뭐가 그리 즐거우세요?" 행복한 사람은 불행한 사람을 데리고 길 건너편에 있는 병원으로. 수술실 앞에서 초조해 하는 사람들 병실에서 앓고 있는 사람들 링거를 꽂은 채 휠체어를 굴리며 가는 사람들, 그리고 영안실에서는 울음소리가 높았다. 병원을 나서면서 행복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우리는 저들에게 없는 건강이 있으니 행복하지 않은가요?" 날 걱정해 주는 아내와 귀여운 아이들이 있으니 행복하지 않은가요?"나는 불행이 일 때마다 숨을 크게 쉬어 봅니다. 공기가 없다면 죽게 되겠지요. 그런데 공기가 있지요, 죽어서 묘 자랑을 하느니 살아서 꽃 한 송이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 행복의 비결입니다.“없는 것을 욕심 부리지 아니 하고 가지고 있는 것에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그 사람이 진정 행복을 느낄 줄 아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예절과 도덕“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럴 때 마다
“예절‘은 타인의 인격을 존중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
’도덕‘은 그 일을 하고나서 기분이 좋은 것.
2015년도 년회비 납부하여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2015 년 3 월 일
(사)한국도덕운동 인천협회 회장 박종길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다면 자신의 일부분을 미워하는 것
내가 열두 살이 되던 이른 봄, 엄마는 나와 오빠를 남기고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남겨진 건 엄마에 대한 추억과 사진 한 장. 엄마는 사진 속에서 늘 같은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아빠는 그렇게 엄마의 몫까지 채워가며 우리 남매를 길러야만 했다.
그게 힘겨워서였을까? 중학생이 되던 해 여름. 아빠는 새엄마를.....
엄마라고 부르라는 아빠의 말씀을 우리 남매는 따르지 않았고 결국 생전 처음 겪어보는 아빠의 매 타작이 시작되었고, 그래도 끝까지 엄마라고 부르지 않았다. 왠지 엄마라고 부르는 순간 돌아가신 진짜 엄마는 영영 우리들 곁을 떠나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가슴엔 어느새 새엄마에 대한 적개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새엄마를 더 미워하게 되는 결정적인 일이 벌어졌다.
내방에 있던 엄마 사진을 아빠가 버린다고 가져갔다. 엄마 사진 때문에 내가 새엄마를 더 받아들이지 않는 거라는 이유에서였다. 이때부터 새엄마에 대한 나의 반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다른 사람의 기준으로 보면 새엄마는 분명 착하신 분이었다.
그러나 한 번 타오르기 시작한 적개심은 그 착함마저도 위선으로 보일 만큼 강렬했다.
난 언제나 새엄마의 존재를 부정. 그 해 가을 소풍날. 학교근처 계곡으로 소풍을 갔지만, 도시락을 싸가지 않았다. 소풍이라고 집안 식구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점심시간이 되고 모두들 점심을 먹을 때, 계곡 아래쪽을 서성이고 있는 내 눈에 저만치 새엄마가 손에는 김밥도시락이 들려있었다. 뒤늦게 이웃집 정미 엄마한테서 소풍이라고 전해 듣고 도시락을 싸오신 모양이다. 난 도시락을 새엄마가 보는 앞에서 계곡물에 쏟아버렸다. 뒤돌아 가다 돌아보니 새엄마는 손수건을 눈 아래 갖다 대고 있었다. 얼핏 눈에는 물기가 반짝였지만 난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증오와 미움 속에 중학시절을 ....
아빠와 새엄마는 담임선생님 말씀대로 가까운 인근의 인문고 진학을 원하셨지만, 난 산업체 학교를 고집. 새엄마가 원하는 대로 하기 싫었고, 하루라도 빨리 집을 떠나고 싶었다.
집을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드디어 그날이 오고, 가방을 꾸리는데 새엄마가 울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정말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않으리라 마음속으로 결심했다. 보름이 넘도록 집에 연락 한번 하지 않았다. 산업체 공장생활은 시작되었고, 낯섦이 조금씩 익숙해져 갈 무렵 옷 가방을 정리하는데 트렁크 가방 맨 아래 검은 비닐봉투가 눈에 들어왔다. 분명 누군가 가방 속에 넣어놓은 비닐봉투. 봉투 속에는 양말과 속옷 두벌 그리고 핑크빛 내복 한 벌이 편지와 함께 들어있었다. 두 번을 접은 편지지 "새엄마“의 가지런한 글씨체...그 안에는 놀랍게도 아빠가 가져간 엄마사진이 새엄마는 아빠 몰래 엄마사진을 간직했다가 편지지속에 넣어서 내게 준 것이다. 이제껏 독하게 참았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되며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그 동안 쌓였던 감정의 앙금이 눈물에 씻겨 내렸다.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 처음으로 그날 밤새도록 울고 또 울었다. 첫 월급을 타고 일요일이 되자 난 홍천행 버스를 탔다. 밤새 눈이 많이 내려 들판에 쌓여있었다. 아빠, 그리고 새엄마, 내복을 선물로 준비. 새엄마가 동구 밖에 나와 날 기다리고 계셨다. 빗자루가 손에 들린 엄마 뒤에는 훤하게 아주 훤하게 쓸린 눈길이 있었다. 새엄마 그 동안 속 많이 상하셨죠? 이제부턴 이 내복처럼 따뜻하게 엄마로 모실게요." 아직도 말로 못하고 속말만 웅얼거리는 나를, 어느새 엄마의 따뜻한 두 팔이 감싸 안고 있었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다면, 그 사람의 모습 속에 보이는 자신의 일부분을 미워하는 것이다. 至誠感天-정성이 지극하면 하늘도 감동한다는 고사를 또 울리며.....
한국도덕운동 인천협회
http://cafe.daum.net/kmmA
회장 박종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