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TV 임지섭 편집장』
100년이 넘은 역사를 가진 건축물들의 소멸은 단순히 건물의 소멸을 의미하지 않는다. 중요한 역사적 자료와 함께 건물에 얽힌 이야기도 모두 사라진다. 역사적·문화적·사회적·경제적 가치를 지닌 건축물을 보존하는 일은 인천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이다. 다양한 작품에서 인천의 이야기를 풀어낸 인천출신의 소설가 양진채는 인천이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다른 도시와 별반 다르지 않게 변해버리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무분별한 개발로 ‘인천다운’ 가치를 잃는 것을 경계했다.
신흥동 옛 시장관사가 시민을 위한 복합문화공간, ‘긴담모퉁이집’으로 재탄생 해 5월 24일 시민에 개방된다.
근대화의 큰 파도를 최전선에서 맞이한 개항도시 인천은 그 어떤 도시에서도 볼 수 없는 문화적 자양분을 축적하고 있다.
개항도시 인천의 정체성을 알리는 건축물이 개발주의 또는 도시화에 밀려 사라지는 일이 잦아지자 인천시가 2018년부터 보존 가치가 큰 근대건축물을 발굴해 보존하고 있으며, 그중 일부를 복합역사문화공간으로 조성해 활용하고 있다.
역사적·문화적·주거사적 가치가 큰 건축물을 보존해 시민을 위한 지역 문화공간으로 활용하고 다음 세대에게까지 인천의 정체성과 가치를 계승한다는게 사업의 취지다.
긴담모퉁이집은 제물포구락부(2020년 6월)와 시민애(愛)집(2021년 7월)에 이어 세 번째로 시민에게 개방되는 인천시 문화재 활용정책 3호 공간이다.
지하 1층, 지상 2층, 연면적 251.46㎡ 규모의 목조 철근 콘크리트 건축물은 서양건축 양식과 구조에 전통 일식주택 요소를 더한 문화주택(文化住宅)의 전형적인 건축 공간 구조를 간직하고 있다.
문화주택은 일제강점기, 특히 1920년대 이후부터 1970년대까지 서양식 주택을 지칭하며 유행한 용어다. 1920년대 일본에서 새로운 문물에 접두어로 붙던 문화(文化)라는 단어가 주택(住宅)과 결합하면서 서양식 주택 또는 새로운 주택을 지칭하는 단어로 생겨났고, 그런 의미의 문화주택이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유입돼 유행했다.
전형적인 문화주택의 건축물이라는 점을 넘어, 긴담모퉁이집이 갖는 역사적 가치는 크다.
긴담모퉁이길은 신흥동 일대에 살던 일본인들이 축현역(지금의 동인천역)과 경인가도(배다리 쪽)를 편하게 오가기 위해 홍예문(1908년)보다 일 년 먼저 낸 신작로다.
이 길은 신흥동 정미소로 출근하던 조선 아낙네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932년 당시 인천의 16개 정비소 여공은 모두 1,300여명. 도정한 쌀에서 쌀겨와 잔돌을 골라내는 일을 하던 조선인 선미공(選米工)들은 일본인들로부터 견디기 힘든 민족적·성적 차별을 받았다.
1930년 대 조계지에 터를 잡지 못한 일본인들이 이곳 신흥동에 눈을 돌렸으며, 듬성듬성 있던 조선인 가옥과 주변의 무덤들이 정리된 반듯한 골목길 양쪽에는 일본인들의 문화주택이 들어섰다.
긴담모퉁이집도 1938년 건축돼 1954년부터 1966년까지 인천시장 관사로 사용됐으며, 주변 여러 관사들이 들어서면서 한때는 이곳을 관사촌으로 부르기도 했다.
역사적 건축물, 시민서재·시민사랑방으로 재탄생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한 신흥동 옛 관사는 시민의 서재, 시민의 사랑방으로 활용된다.
건축 당시 원형을 거의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2층과 지하 벙커는 시민이 기증한 책들을 전문 큐레이션을 통해 비치해 테마가 있는 서재 공간으로 꾸미고, 건물 외벽은 인천 원로작가회와의 제휴 협력을 통해 분기별로 여섯 작품씩 총 24작품을 출품, 전시해 골목갤러리로 활용한다.
문화공간이 부족한 신흥동의 상황을 고려해 사랑방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한다.
6월부터 매주 금·토·일요일 ▲어르신과 초보자를 위한 힐링요가 ▲말없이 마시는 커피 ▲해설이 있는 영화감상 등이 시민서재와 모랫말 쉼터에서 진행된다.
한편 인천시민애(愛)집과 제물포구락부, 자유공원-신포시장-답동성당-긴모퉁이길-신흥동 옛 시장관사를 걷는 인문로드 프로그램 ‘긴담모퉁이집 가는 길’도 선보인다.
개항장 너머 ‘모랫말’이라 불리던 한적한 바닷가 어촌 마을이 지금의 신흥동이 되기까지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골몰길을 함께 걸으며 들을 수 있다. 프로그램 참여는 제물포구락부 카카오톡 채널을 통해 신청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