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N 뉴스 유도형 기자] 대한민국특수임무유공자회 인천광역시지부(지부장 유계열)는 지난 9일, 해군 14용사 충혼비(소유자 해군 301첩보대, 백령면 진촌리 산 35-1)에서 『제 26주년 백령도 특수임무전사자 14위 추모식』 거행하였다.
본 추모식은 특수임무유공자 및 유족, 해병 6여단(여단장 권태균), 백령면사무소(면장 임상훈) 및 지역 주민들의 참석과 인천시청(시장 유정복), 인천보훈지청(지청장 박용주), 옹진군청(군수 문경복), 특수임무수행자 보상지원단의 후원으로 거행되었다.
이 날 행사는 국가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특수임무전사자들을 기리기 위한 묵념과 헌화를 시작으로 진행되었다.
1950년, 당시는 남.북간 경계선을 놓고 첩보전이 치열한 시기였다.
백령도 앞 월래도는 1950년 6월 25일 이전 남한의 관할 이었는데. 북한 인민군의 약탈과 노략질이 빈번하여 주민을 백령도로 이주시킨 사이 북한이 결사대를 남파하여 점령하자 이를 수복하기 위한 우리 해군첩보부대 작전으로, 치열한 교전 끝에 해군첩보부대원 14인이 전사하였으며, 당시 전사한 해군첩보부대원들은 시신 초자 수습하지 못하였고 그중 3인은 끝내 미상으로 남아있다.
당시 백령도 주민과 백령면사무소에서 합동 장례식을 거행하였고, 현재 지번에 충혼비를 세월 14인의 이름을 새겼으나, 6.25 발발 후, 북한 인민군의 파괴로 비석 일부만 남아 현재 8인의 이름만 남아있다.
해군첩보부대는 1948년에 창설된 대한민국 최초의 첩보부대로서 인천상륙작전 당시 X-RAY 작전 선견 공작으로,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는 업적을 탄생시켰으며 누란의 위기였던 6.25전쟁의 전황을 뒤집는 초석이 되었다.
공식 추산 7726위(비공식 추산 1만 5천)의 공작원들이 국가를 위하여 음지에서 특별한 희생을 하였으며 이 중 상당수는 적지에서 유해조차 돌아오지 못했다.
이는, 국가보훈부 보훈단체 중 6.25 참전 전사자를 다음으로 가장 많은 희생을 치른 수치이다.
인천보훈지청 박용주 지청장은 ‘조국의 자유와 평화 수호를 위해 희생하신 특수임무 전사자들의 위국헌신의 정신을 되새기며, 영원한 안식을 기원한다며.’며 추모를 전해왔으며, ‘연평균 1,446회에 이르는 재난구조, 환경보호와 같은 사회공헌활동들은 우리 국민들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고 하였다.
대한민국 특수임무 유공자회는 1948년부터 2002년 까지 국가를 위하여 특별한 희생을 한 육,해,공 첩보부대 출신들로 구성된 단체로, 일명 ‘북파 공작원’으로 불리며 그 이미지가 다소 강하였으나, 현재는 지역사회에서 재난구조활동 및 범죄 예방 활동 등 사회 공헌 활동으로 봉사하는 국가보훈단체로서 거듭나고 있다.
유계열 지부장은 ‘백령도 특수임무전사자 14위 추모식을 통하여 아직도 음지에 묻혀있는 특수임무 유공자들의 역사가 재조명 되어 대한민국의 빛나는 역사로 거듭나길 기원한다’고 하였으며 ‘대한민국 첩보사에서 비공식 추산으로 역사에 남지 못한 특수임무전사자들의 영령들도 같이 추모하고자 한다며, 추도사를 하였다.
또한, 미군정 산하에서 활동한 비정규군(KLO)을 기리기 위한 ’반공유격 전적비‘ 및 ’백령 현충탑‘, ’천안함 46용사 위령탑‘을 찾아 조국을 위하여 희생한 영령들을 위로하고 추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