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일전 저녁 퇴근길 전철을 이용했다.
지하도 역 계단 앞에서 두리번거리던 여학생 둘이 다가오더니 “할아버지, 휴대폰 좀 빌려 주세요” 급한 사정인가 싶어 빌려주었다.
휴대폰을 보더니 원시시대 사용하는 것이라고 중얼거린다.
어이없는 건 통화 내용이었다.
그들은 잠시를 못 참아 약속 장소로 오는 중에도 야단들이다. “지금 전철에서 내렸어” “계단 올라가고 있어” “거의 다 왔어” “이제 날 봐” 이렇게 휴대전화를 통해 실시간 중계방송을 한다.
느긋이 기다렸어도 될 일을 빌린 휴대전화로 중계방송을 하던 그들에게 ‘기다림’이란 과연 없을까?
기다리는 마음’의 밑바탕에는 애절한 사연이 있다.
왜(倭)국에 붙잡혀 신하되기를 거부하다가 화형 당한 박제상. 기다려도, 기다려도 오지 않는 임, 그 남편을 기다리다 죽어서 망부석이 됐다는 망부석 설화가 가슴을 적시는데,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이 기다림의 문화가 말은 사라지고 있다.
휴대폰을 돌려주면서 할아버지 죄송합니다. 한마디 말도 없다.
기다림의 미학이 통하지 않는 요즘 세대를 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