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상업용 지하건축물들이 대형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지하철 역세권 개발과 연계된 테마형 지하상가들이 엄청난 이익을 남길 수 있다는 사례가 입증되면서 지하공간이 점차 커져만 가고 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얘기해서 이런 지하건축물은 상업적 성공 가능성이라는 측면을 제외하면 모든 면에서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다. 특히 방재 측면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대구 지하철 사고의 예에서도 보았듯이 사고 당시 수많은 소방차와 소방관이 일찍 현장에 도착했지만 초기에는 아무도 지하로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인명피해가 더 커진 것이다.
대개 불이 나면 소방관들은 계단에서부터 물을 뿌리면서 건물 내 통로를 확보하여 진화활동과 구출활동을 한다. 그러나 지하건물에서 불이 나면 계단 입구로 엄청나게 뜨거운 연기와 유독가스가 분출되고 발화지점이 깊숙한 곳에 있기 때문에 아무리 물을 뿌려도 소용이 없다. 따라서 어느 정도 불길이 수그러들기 전에는 소방관들이 건물 내로 진입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대형 상업용 지하건축물을 만들 경우에는 반드시 자연채광, 자연환기 그리고 지상으로 통하는 직선 피난계단 등이 설치된 지하 노천공간, 오픈홀과 같은 1차 피난공간 등이 설치되지 않으면 안 된다. 화재로 정전이 되고 유독가스가 가득찬 지하공간에서 공간지각능력이 상실된 채 공포에 휩싸인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극히 단순하고 명쾌한 통로구성, 자연환기, 자연채광이 반영된 밝고 안전한 공간, 손쉽게 찾기 쉽고 여기저기 사방에 배치된 계단 등일 것이다.
최근 들어 소방법이 많이 강화되었지만 지하건축물에 대한 체계적인 방재대책은 아직 미흡한 실정이다. 앞으로 지하공간과 관련된 법을 본격적으로 개정하여 지하건축물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인식하는 새로운 관점에서 모든 분야의 안전기준을 더 한층 확대,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